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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3 20:59

쇼팽 - 즉흥환상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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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di Li - Chopin "Fantasie" Impromptu, Op. 66

 

Chopin - Fantaisie Impromptu, Op. 66 (Rubinstein)

 

쇼팽은 즉흥곡 4개를 작곡했습니다. 조르즈 상드와 사랑에 빠질무렵 작곡했다고 합니다.

 

제1번 : A장조 Op.29 ~ 1837년작품 4곡중 명쾌한 곡 
제2번 : F장조 Op.36 ~ 1839년작품 명쾌하지않고 발라드풍의 명상적임 
제3번 : G장조 Op.51 ~ 1842년작품. 연주가 드물지만 트리오의 차분한 선율의흐름 
제4번 : C장조 Op.66 ~ 즉흥환상곡 3토막형식(ABA)으로 나누어짐 
        1834년작품. 24세경 작곡(제일먼저 작곡되었지만 사후에 발견됨으로 제4번으로 정리가 됨)

 

A부분 : 현란하게 질주하는 16음표 기교의 쾌감을 만끽 노도와 같은격정으로 (남성적) 
B부분 : 중간부분은 반대로 칸타빌레의 노래하는듯한 아름다운 서정미를 느낌 (여성적) 
A부분 : 두부분의 강렬한 대비가 환상적 분위기 연출 후반 노도와 같은 격정(남성적)

 

즉흥환상곡의 특징으로는 
아름다운 선율은 왼손과 오른손이 완전히 따로 노는 엇박자 패턴으로 구성되었고 불규칙적인 규칙성 사이에 여러겹으로 포장되어 화려하면서 매우 선명하게 연출됩니다. 
특히 전후부에서 왼손과 오른손의 빠른 악구(樂句)가 격렬하게 교차하는 중간부분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데. 낭만파 시대의 특징적 장르가운데 하나로서 자유롭고 즉흥적인 느낌을 가진 작품입니다. 
전세계에 널리 연주되는 작품으로 깊이가 매우 심오한 까닭에 연주를 접하기 힘든데 피아니스트들이 이곡을 연주함으로 명성을 얻기보다는 오히려 명성을 떨어트릴수 있다는 우려속에 실제 무대에서는 잘 연주가 이루어 지지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대에서 직접 감상할 기회를 만나기 어려운 “귀하신 몸이죠” 이 때문에 음악애호가 들에게 익숙하면서도 거리감을 유지하고있습니다.

쇼팽이 즉흥환상곡 제4번을 너무나 아낀 나머지 출판을 하지 않다가, 사후에 세상에 알려진 곡으로도 아주 유명합니다.

 

*

 

‘피아노의 시인’ 이라 불리는 쇼팽은 39년의 짧은 인생 동안 오로지 작곡과 연주회에 전념하였다.

러시아가 폴란드를 침공한 후에는 파리로 건너가 연주회로 번 돈을 모두 조국을 위해 싸우는 독립 운동가들의 지하자금으로 송금한 위대한 애국자이기도 하다. 이처럼 폴란드를 사랑했던 쇼팽은 파리로 떠나올 때 조국의 흙 한 줌을 소중히 싸가지고 왔다.
쇼팽이 숨을 거두자 조국의 한 줌 흙은 그의 시신 위아래에 뿌려졌고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새겨졌다.
 
‘여기 파리 하늘 아래 그대가 잠들고 있으나, 그대는 영원히 조국 폴란드의 땅 위에서 잠들어 있노라’

쇼팽은 폴란드에서 프랑스어 교사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4세 때 피아노 기초 교육을 받기 시작한 그는 12세 때 정식으로 작곡 교육을 받았다.
15세 때 처녀작 ≪론도 작품 1≫을 출판했고, 18세 때 베를린을 방문해 유럽 음악계를 견문했다.
 
다음해 유럽 음악의 중심지 빈으로 가서 독주회를 열었다.
슈만은 "여러분,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하십시오. 여기 천재가 나타났습니다." 라는 극찬을 함으로써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그는 여러 나라를 전전한 끝에 파리에 정착, 음악가로서 지휘를 굳혀 갔다.

26세 때 리스트의 소개로 진취적인 여류 소설가 조르쥬 상드를 만났다. 그때 이미 그는 폐결핵을 앓고 있었다.
섬세하고 내성적인 기질의 쇼팽은 남장을 하고 엽연초를 피우는 6세 연상의 상드의  극진한 병간호를 받으며 작곡에 전념했다. 이들은 마요르카 섬에서 사랑의 공동 생활을 즐겼는데, 이곳에서 쇼팽의 병세는 악화되었지만 주옥같은 명곡들을 많이 작곡했다.
 
그러나 영원할 듯하던 둘의 사랑도 서서히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쇼팽을 돌보는 데 지친 상드의 마음은 쇼팽에게서 떠났고, 약하고 소심한 성격의 쇼팽은 이를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공동 생활은 1846년 여름...그의 나이 36세 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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